엘리베이터의 'R'층

어른이 된 지금도,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못 탈 정도로 트라우마가 생기게 된 일이 있습니다.
중학교 시절에 같이 어울려 다니던 후지사와라는 녀석이 있었습니다. 우리 둘 다 한창 사춘기로 방향 기일 때여서 허구한 날 밤늦게까지 아무 목적도 없이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어느 하루는 후지사와네 부모님이 출장 가서 안 돌아온다기에 걔네 집에서 하루 묵기로 했습니다. 그날 역시 한밤 중까지 밖에서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파져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후지사와네 집은 고층 아파트 10층에 있었습니다. 고층 아파트라고는 해도 지은 지 한참 지나 대문에 오토락도 없고 여기저기 지저분한 건물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홀에서 엘리베이터를 탄 뒤, 10층 버튼을 눌렀습니다. 하지만 문이 닫히려는 순간 갑자기 손이 들어와 [쾅!] 하는 소리를 내고는 다시 문이 열렸습니다. 억지로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건 시커먼 옷을 입은 남자였습니다. 후지사와도 저는 속으로는 기겁할 정도로 놀랐지만 티를 내지 않고 짜증 난다는 듯 남자를 노려봤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어서 눈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저 안색이 좋지 않았던 것만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거기서 저는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분명 12층까지만 버튼이 있었을 터인데 어째서인지 남자가 누른 버튼은 "R"이었으니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옥상으로 가는 버튼 같은게 있었나 싶어서 후지사와를 바라봤습니다. 후지사와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순간 눈이 마주쳐 서로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평소보다 느리다 싶어서 문자판을 올려보는데, 후지사와가 갑자기 입을 열었습니다.

[야, 우리도 옥상 보러 갈까?] 저도 솔깃한 제안이였지만,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저는 문자판을 계속 바라보며, [됐다. 배고파.]라고 대답했습니다. 후지사와는 의외라는 듯, [그래? 뭐야... 빨리 돌아가자.]라고 말했습니다. 10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였습니다. 뒤에서 [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아 뒤돌아봤습니다.
 
닫히고 있는 문 사이로, 서 있는 남자의 얼굴이 확실히 보였습니다. 핏기가 없는 창백한 얼굴에 눈에는 검은자위가 없었습니다. 입은 반쯤 벌리고 있는 괴상한 얼굴이었습니다. 그 얼굴을 본 순간 온몸에 전류가 흐르듯 소름이 돋았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뒤, 엘리베이터 문에 달린 유리창 너머 보인 엘리베이터 안은 텅 텅 비어 있었습니다. 확실하게 남자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조용히 엘리베이터는 위로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집에 들어가, 문을 잠궜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알아차리고 다시 소름이 돋았습니다. 1층에서 남자가 올라탔을 때, 그렇게 급히 나타났는데도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었습니다. 후지사와네 집에 불이란 불은 다 켜고, 밥을 먹으며 아까 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후지사와도 꽤나 당황한 듯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나도 발소리 못 들었어... 애시당초에 옥상으로 가는 버튼은 있지도 않은데, 뭐야, 저건...] 
하지만 진짜 충격은 그 다음 후지사와가 한 말이었습니다.
[네가 갑자기 옥상에 가자고 했을 때는, 진짜 어떻게 해야 하나 싶더라...]
[어? 그건 네가 말한거잖아?]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는 소름이 끼쳐서 한동안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완전 쫄아서 확인해봤지만 엘리베이터 버튼은 12층까지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후지사와네 부모님에게 전해 듣기로는 그 아파트는 정기적으로 옥상에서 떨어져서 죽/는 사람이 나오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집값이 싸다고 했습니다. 부동산에서는 정신 병원이 근처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라고 했다지만...

후지사와는 그 후 곧바로 멀리 이사를 가서, 연락도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도 한밤 중에 엘리베이터 타는 게 무섭습니다.